한 왕국도 스러지는 것이지
바빌로니아 왕국도 그랬고
고구려 왕국도 그랬고
징키스칸 왕국도 그랬지
그리고 다시 한 왕국이
새롭게 오는 것이지
무너진 성벽 아래 서면
그 아픔 견뎌온
바람꽃 언제나 우릴 반기고
대륙을 도륙 낸 징키스칸도
주검으로 돌아가는 오논강* 가의
보통의 할아버지
천지를 진동하는 말발굽 소리 내며
만주벌 달려 함께 외쳐 봐도
무덤으로 눕고 마는 광개토 대왕
누구든 마음속에
한 왕국 키우지 않는 사람 있으랴
그래서 잃어버린 왕국은 스러지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새 출발 점에 서는 것이지
나는 오늘밤도 한 왕국을 찾아 주춧돌 한 장씩
옮겨 놓으며 그대 별똥별로 내리길 기도 한다네.
*오논강:몽골 동북부 지역에 소재, 징키스칸의 고향이며 그가 대제국 건설을 시작한 곳.
[시작 노트]
이따금 잠 아니 오는 밤이면 잃어버린 왕국을 순례하너라 밤을 지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왕국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탄생과 소멸을 거듭할 뿐이다. 시공을 넘나들다 보면 그들은 한 점에서 만나 인류 문제의 문제점은 물론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네의 어려운 과제들까지 풀어내 준다. 그러면서도 내 자란 땅과 하늘 아래서만 만나고 내 핏줄 속에서도 왕국은 새로 태어나기를 거듭한다. 궁극 점에 다다르면 그 왕국은 나다. 잃어버린 왕국이 ‘나’로 되지 않으면 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도 시를 쓴다.
[이삼헌시인 약력]
62년 경향신문 시 당선, 한국현대시인협회․한국기독시인협회․국제PEN 회원(시),시집 “의정부행 막차를 타고”, “3인 시집 여울목 장승 촛불”“내 유년의 우체국에서” (2022년), 수상, 중대문학상·미당시맥상 수상등, 미당시맥회장(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