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지리산 이끼가 푸르죽죽하게 끼어있는 지리산 화개골
날이 풀려 햇살이 따스한 날 오후
낫 한 자루 들고 슬렁슬렁 차산으로 가는 길
산 초입에 여든의 윤도현 어르신 부부
삽으로 밭고랑 갈아엎고 계신다
뭐 심으실라꼬예?
감자 좀 심을라고 그래
연세도 있으신데 하루도 안 쉬고 일 하시네요
아 살아있을 꺼정은 몸 움직여야제
예 몸 조심하시고예
저는 차산에 억새도 베고 가시도 좀 벨라꼬 올라갑니더
가파른 차산 가까이 오르니
스무 그루 넘는 매화나무 꽃 활짝 피어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있다
[시작노트]
지리산 깊은 골짜기인 화개골에는 새들도 더디게 난다. 바쁜 세상과는 한참 느리게 시간이 간다. 사방이 산이다. 그 가운데 화개동천이 길게 흐른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이곳에도 날이 풀려 봄이 왔다. 골짜기 주민들은 조그만 밭뙈기에 봄 감자를 심고 있다. 낫 한 자루 들고 차산에 올라가니 매화가 만개하여 바람에 일렁거리고 있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한 매화에 어찌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해훈 시인 약력}
; 1987년 『오늘의문학』, 1989년 『한국문학』으로 시작활동. 시집 『생선상자수리공』·『내가 낸 산길』 등. 최계락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