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공원 성벽 및
늙은 화공의 화선지에
만추의 오후가 살을 부빈다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이
파렛트 속으로 뛰어들고
시간이 쌓아놓은 성벽으로
느림을 즐기는 바람이 놀고 있다
눈물이 다녀갔을까
습기 묻은 주름에는
갈잎 같은 검버섯이 피고
점 하나 찍지 못한 그의 붓은
추임새 같은 비둘기 울음에 지휘봉이 된다
그리지 않은들 어떠랴
늙어버린 억새와 시공간을 건너갈 화공의 은발과
여백의 화선지가 한 점의 가을인 것을
어깨를 끼고 둘러선 성곽으로
느릿느릿 오늘이 걸어가고
억새밭엔 카메라 셧트 소리에
또 다른 오늘이 화려하게 정지된다
마른 이젤처럼 휘청이는 화공
주섬주섬 마음을 거두며
깊은 숙면을 위해
마지막 옷을 벗는 나목을
가슴에다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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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화 시인 약력]
<문파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복사꽃 지는 소리>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수상;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수필) 경북일보 2019 문학대전 입선 (수필) 경북일보 2020 문학대전 입선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