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다갈색 뺨 아흔네 살 할머니가
투명한 유리잔을 두 손으로 감싸쥔다
보드카 홀짝이던 밤 그날 다시 떠올리며
보따리에 지고 왔던 아픔을 싸둔 채로
움막 같은 집을 짓고 눌러앉은 저 황무지
강 진펄 갈밭 수렁을 옥답으로 일궈냈다
찬바람 이는 눈길,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
긴긴날 울고 웃다 마침내 잠든 그곳
알마티* 돌비석 위에 아리랑을 새긴다
춥고도 깜깜한 밤 꽃 피는 봄을 그려
광야가 불러주는 별의 노래 듣고 있다
그 노래 초원을 돌아 반도 하늘 찾아가네.
*카자흐스탄(Kazakhstan)공화국의 옛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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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시인 약력]
가톨릭 음대 성악과 졸업. 한국시조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