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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봄날 -시인 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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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4-05-12 08: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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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 속에서도 땅은 여전히 

봄을 키우고 있었다 

 

잔설 속 냉이가 피워낸 앙증맞은 꽃, 

방풍나물 두릅 쑥 살짝 고개를 내밀고 

목련 흐드러진 마당 한쪽으로 

홍매화가 배시시 붉게 웃는다 

 

보드라운 부추 한 소쿠리 다듬어 전을 부쳤더니 

부르지 않은 손님으로 들고양이가 

슬그머니 자리 잡고 눈치 본다 

 

외손녀 엉덩이춤에 

이웃사촌 익살까지 얹혀 

웃음꽃 활짝 폈다

 

눈부신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는 장독대 

햇장이 달게 익어가고 

꽃향기 그윽한 바람에 실려 

아쉬움 뒤로 하고 봄날이 간다 

 

 <시작 노트>

 트랙터로 밀어 놓은 밭에서 동생 내외가 흙을 고르고 이랑 돋우기에 구슬땀을 흘린다. 부추전, 쑥전에 막걸리 한 사발 곁들여 새참이 차려진다. 

 연못의 붕어들은 연잎 사이를 헤엄쳐 돌고, 손녀들은 잔디밭에서 공놀이로 바쁘다. 풀 내음, 꽃향기 밀려 오는 테라스 원탁엔 웃음꽃이 자지러진다.

 오늘 이 봄을 위해 덜 자고 아껴 쓰고 쉴 틈 없이 일 속에 묻혀 살았던 동생 내외다. 조금 덜 가져도, 남보다 앞서 가지 못해도 욕심을 덜어낸 자리에 평화로움이 채워진다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기에 이루어진 오늘이다. 천천히 봄이 가고 있다.

 

 〔김도희 시인 약력〕

 황해도 사리원 출생. 2023년 <시인마을문학상>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경기여류문학회, 수원시인협회 회원. 수원문학아카데미 회원. <시인마을> 동인. 시집 『나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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