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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쌀 -시인 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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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4-04-08 09: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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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에 오르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냐?”

흙 속에 타다 남은 쌀 한 톨

그 불길 속에

네 하나가 용하게

남아 있었구나.

까만 쌀 한 톨.

 

그 속에 타버리지 않고

꼭 꼭 다져진

그날의 이야기

 

무너지는 성벽

아우성

튀는 피!

 

아, 바람 속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

 

부소산을 지나는 바람

바람 속에 불길이 보인다.

 

그 불길 속에서

용하게 타다 남은

백제의 쌀

 

까맣게 남은

백제 이야기.  

 

[시작노트]

 1967년 8월. 백제 옛 수도인 부여로 여행을 갔다. 50여 년 전에는 부소산성 군창터에서 타다 남은 군량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당할 때 군량미 창고가 불탔다. 천년 세월동안 숯덩이로 남아있는 탄화미를 발견하고는 온 몸이 감전된 듯 찌릿찌릿 떨렸다. 부여 관광을 마치고 경주로 돌아오는데 그 쌀이 계속 날 따라왔다. 백제의 쌀이 군인의 밥이 되지 못한 채 화염 속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천년세월동안 까만 상흔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신비감이 몰려들었다. 불행했던 백제 멸망의 유적 속에서 백제인의 한(恨)이 내 감성 안테나를 흔들어대어 이런 동심의 시가 태어났다.

역사는 천만년이 흘러도 그 팩트는 변하지 않는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오판독하여 기록할 순 있으나 사실(史實)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신라와 백제가 원수처럼 지내면서 죽이고 복수하고 이를 갈던 전쟁시절도 있었다. 백제 아사달이 경주 불국사 무영탑(석가탑)을 조각하고 영지에서 아사녀를 따라 죽었다고 한다. 백제 서동왕자가 신라 선화공주를 사랑하여 짝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를 기억에서 지워버리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원수를 맺고 살아가선 안 된다. 이 작은 땅덩이에서 한민족 한 형제로 손잡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백제의 쌀 한 톨이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야 남북통일도 가능하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정용원시인 약력] 

1966<서울신문> 童詩 ‘거미줄’ 발표 등단. 1977<아동문학평론>동시 천료, <자유문학> 수필 천료

동시집 “산새의 꿈” 외 15권, 동화, 수필, 칼럼, 논문 등 40여권 출간.

한국문학백년상, 현대아동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김영일문학상, 경남도문화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동시문학회장 역임

현 한국문협정책개발위원, 한국문학신문 논설위원, 서초힐스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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