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방에 들어와서 외투를 벗는다
은행잎 하나가 자기 방인 듯
방바닥에 사뿐히 뛰어내린다
둑길의 공중을 떠돌다, 어깨에 떨어져
나와 함께 동행한 것인가?
서가 위, 영정 사진액자 옆에
마스코트로 올려놓는다
왜, 내 옷깃에 떨어진 것일까?
신발이며 바짓가랑이에 은행 냄새가 배여 있어
걸어 다니는 은행나무가 된 탓일까?
수년간 징코민 캡슐을 먹고
아침밥에 은행 열매를 얹어 먹으니
내 몸에서 동류의 체취를 맡은 탓일까?
낯선 은행나무 가로수 길에서도
내 체취로 여겨지고, 데자뷰를 느낀다
고생대 페름기의 한 때,
천년 고도 서라벌의 한 때,
내가 은행나무였는지도 모르겠다
마른 가지의 손가락으로, 이슬 맞아
단무지처럼 촉촉한 그를 쓰다듬어 본다
누구의 몸틀이 먼저 바스러질까?
친구의 본인 상 부고장이 느닷없이 날아드니
장담할 수만은 없겠지
여행의 동반자, 동행의 분신으로
이생의 시간 동안 함께 지내기로 한다.
[시작노트]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와 매일 아침 산책코스인 양재천 뚝길에는 은행나무가 많다. 단풍 드는 늦가을에는 환하게 빛나는, 부자 된 듯 기분 좋은 황금 동네가 된다. 천생의 좋은 인연인 듯 싶다. 은행잎이 깔린 길은 노란 카펫 같아 마냥 걸고 싶어진다. 은행나무는 천 년 이상 사는 영험한 나무이다. 은행잎과 열매의 성분인 징코 플라보놀은 혈류 개선, 항산화 작용 등으로 노년의 나에게는 고마운 필수 건강증진제이다.
[김세영시인 약력]
2007년 「미네르바」 시 등단.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시집: 『하늘거미집』 『물구나무서다』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서정시선집: 『버드나무의 눈빛』, 디카시집: 『눈과 심장』, 시론 시평 산문집: 『줌, 인 앤 아웃』 상징학연구소 기획자문, 한국의사시인회 고문, 시산맥시회 고문
제 9회 미네르바 문학상, 제 14회 한국문협 작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