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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들의 행렬 -시인 배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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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3-07-10 11: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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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쓸려 가는 행렬은 엄숙했다

어쩌면 수도승의 고행 같은

걸음걸음이 묵주를 즈려밟은 신앙으로 내딛는다 

고해의 강을 건너는 걸음들이 그러했으리라

모두가 뒷모습 뿐인 이 행렬의 묵언들,

가는 곳이 달라도

방향을 잡는 촉은 발 끝에 있다

당장은 자하로 통하는 저 육중한 수레를 탈요량이겠지만

끝내는 숨줄 기다리는 도반의 종착이거나 

토우 빚던 창조의 굴일 터다

썰물처럼 밀려가는 저 불사조들

길다란 이 굴을 지나가면 

고개 꺾고 기다리는 미혹의 집이 있다 

지하로 난 이 길 속에

등골 삭는 발자국이 있다

 

 

[시작 노트]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푸쉬긴의 시의 절편이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벽을 열고 일터로 향하는 군상들이 지하철 통로로 줄지어 가는 생의 행로, 그것이 솟대가 지키고 있는 그들 삶터로 향하는 걸음들 아닐까?

고해를 건너는 그 발길 위에 불사조 같은 생의 줄기가 뻗어 가길 그려본다.

 

 

 

[배문석 시인 약력]

전남 무안에서 출생하여 1978년 《문예정보》로 문단에 문명을 얻었다. 국제PEN한국본부 이사,문학인신문 논설주간, 월간시 편집인, 영등포예총 수석부이사장, 시집 《격렬비열도 날개 달다》 외 5권 등, 발표문집 다수와 칼럼선집 《침묵, 그 깊은 혀의 반란》 《인간의 사회적 통섭 조건》, 《공감과 이해 한뼘 안의 사색》이 있다. 2015경북일보문예대전, 제8회 해양문학상, 계간문예작가상, 2020년 대한민국시인상 금상, 영등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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