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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자국 -시인 김근희
  • 포켓프레스
  • 등록 2023-06-26 0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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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트럭은 폐타이어를 싣고 간다

 

영구차가 마지막 택배물을 싣고 가는 것이다

 

심장이 터져나가도록 옭아맨 끈이 아직은 쓸모 있음을 보여주듯

마감한 생들은 가지런히, 아버지의 아버지처럼 포개어져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다

 

신작로에서는 속도가 점점 느려져도 괜찮을는지 

액설레이터 사선 위를 유유히 굴러가는 폐타이어들

 

경배하고 누군가는 추억할 것이다

 

언덕 위에 쓰러져버린 시지프스는 바위를 내던지고 바퀴를 달았을까 

 

반복된 하루는 굳은살이 없어

아버지는 반들반들한 아기살을 뭉개어 새로운 시지프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발바닥이 녹아 길을 낼 때까지 

 

공터에 서면 햇살의 무게로 패인 회초리 자국이 선명하다

 

바퀴가 오래전부터 파고든 상처의 골을 끌어안고 허공에 땅을 던진다 

 

그것으로 충분한 구원이다

 

 

 

[시작노트]

낡은 트럭이 앞을 가렸다. 폐타이어를 운송하는 차량이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뛰고 굴렀던 피 땀 눈물의 표상이다

살아왔던 길이 실타래가 되어 발목을 묶었다. 지금이라도 매듭 하나를 풀면 와르르 쏟아져 새로운 길이 될 것 같은 바퀴의 운동성은 우리를 긴장시키고 흥분 시킨다. 흘러갔다 흘러오는 반복된 피의 순환이 바퀴에도 있다. 되돌림을 거역하지 않는 둥그런 복종에 가슴을 여미게 된다. 이제 우리의 발자취를 낱낱이 기억하는 바퀴는 어디로 갈까

땅이 아닌 불가마 속에서 비로소 제 몸을 정화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김근희시인 약력]

서울출생. 2013년 <발견> 신인상 수상. 시집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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