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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에서 -시인 최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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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3-06-12 17: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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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마을은 순백으로 저물어가고

희미한 불빛 따라 가는

오르막길은 아득하다

 

산 정상에

다소곳이 앉은 소복한 설경은

먼 몽블랑 산의 모습이다

 

눈길을 

밟는 소리에 유년이 떠오른다

 

절벽 아래 

폭포의 발바닥을 간질이던 고드름은

어디에도 없다

 

흰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초승달 한 조각 

눈보라치는 슬픈 과거를 횡단한다

 

방탕한 바짓가랑이는 젖고 

가슴은 허허롭다

 

백설의 땅에 귓바퀴가 얼어붙고

삭막한 허공을 돌며

썰매를 태워주던 까마귀는 힘차게 날아오른다

 

 

 

[시작 노트]

벽이 된 유리창 곁에 붙박이처럼 앉은 과거의 여자가 흐릿한 사진을 들여다보는 듯 바다를 구경한다. 젖은 유리창에 비 내리는 얼비친 풍경과 저물어가는 해안으로 출몰 하는 흰 돛단배들이 쏟아지는 장면 등을 여자는 펑펑 눈 내리던 어느 해, 일본 아소산을 순백의 옷으로 순식간에 덧입혀 버린 설경을 생각하며 쓴 시 이다

한가롭고 여유 있어 보이는 넉넉한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들듯

눈보라 속을 방황하고 싶었던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해 쓴 시 이다

 

 

[최귀례시인 약력]

2003년 문예한국. 2021년 창조문예 시 추천 등단. 부산크리스천문인협회 회장

(사)부산시인협회 이사, 부산여류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폴 세잔느의 여행」 「낮잠」「여자가 테라스에 앉아 있다」 「바다의 뿔」 「타인들의 마을」

현재 예향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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