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 잔 권하던 도연명을 떠올리면
독작의 애먼 적막도 어지간히 취기가 돌아
빈 술잔 한 번 더 비워 흥에 빠져든다네
맛은 어디서 일며 향은 뉘의 슬픔인가
내려놓을 수 없는 하늘 머리에 하나씩 이고
취기도 술과 같으니 잔 들어 흥 돋우네
신명에 마음 흐르고 생각은 흥에 젖고
쓸다 만 그림자인가 슬그머니 다가앉아
술 떠난 시의 자락을 자꾸 잡아당기네
(시작노트)
애주가라면 애주가라 할 수 있는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한 지가 어언 1년이 되었다. 친구가 있을 때 항상 술이 있었다고 한 도연명을 떠올리면 역시 편안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을 듯하다. 술을 즐거움이다. 술이 있고 편안한 친구에 시까지 곁들인다면 그 즐거움은 더욱 깊어지리라.
[권갑하시인 약력]
문화콘텐츠학 박사. '조선일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겨울 발해' 등 6권. 평론집 '현대시조와 모더니즘' 등 2권. 수필집 '하얀 인연'. 중앙시조대상 등 수상. 농협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