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글도 쓰고 싶었는데
거기에 푹 빠져들 때마다 방 닦으라고 호출하다니요
그건 하교 후나 방학 때면 맨날 책만 읽다가 발각된 잘못이겠죠
엄마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행여 누군가가 볼까 봐 방문을 닫아 걸고는
안방 천장에 사방연속무늬가 꽉 찬 허공을 만들었어요
그러고는 방 한가운데서 춤을 추었지요
돌아라, 돌아라
조금 전 읽다 만 만화책 속 눈 커다란 발레리나 소녀가 되어
몇 바퀴 빙빙 돌다가 결말을 모르는 만화책을 상상으로 완독했어요
잠시 후 마루로 나올 때는
방 네 귀퉁이에 숨은 먼지까지 싹싹 닦고 나올 만한 시각
허공을 닦던 걸레는 짧은 시간의 때만 잔뜩 묻었어요
감쪽같이 속은 줄도 모르는 엄마는 저녁밥 짓느라 정신없었고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그 방바닥에 하루를 내려놓고
아버지와 나란히 누웠어요
안방을 드나들 때마다
딱 한 번 기발하게 생각하고 실천한 그 일이 걸렸지만
그래도 유년의 나는
겉으로는 여전히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어요
<시작 노트>
왜 그랬을까? 다른 때는 시키지 않아도 여러 개의 방이며 마루를 잘도 쓸고 닦았는데, 그 일로 칭찬받는 걸 즐겼는데, 그날은 달랐다. 볼이 부었다. 만화책에 한창 빨려드는데 방 닦으라는 말에 심통이 났다. 안방 문을 닫고는 걸레로 허공을 닦았다. 방 한가운데서 빙빙 돌았다. 돌 때마다 오른손으로 치켜든 걸레도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형식적인 방 닦기였다.
[구순희 시인 약력]
부산광역시 기장 출생.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