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정상에 오르면
눈들이 서로 손잡고 춤을 추며
사소한 것을 다 덮어 버리고
두리뭉실한 곡선을 타고
갖가지 상상의 나라로 인도한다
빌딩에 둘러싸여 고집을 부리고 있는
저 눈 덮인 단층집에서는
무슨 버릴 수 없는 가족사가 쌓여 있기에
낡은 굴뚝이 아직도 뻣뻣하게 곧추서서
아침 연기를 피워 올릴까
눈을 머리에 이고 엉금엉금
벤츠 자동차 안에는
천국에서는 휴지가 될
지폐들을 주으러 가는 것일까
주어와 동사만이 있는 문장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
굳이 형용사와 부사를 동원하여
꾸며본들 결국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과객 아닌가
<시작노트>
1969년부터 오목교 부근 공군교재창 번역실에서 3년간 군 복무를 할 때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곳이 현재 양천구 신정동이다. 1987년에 분양받아 지금까지 살고 있는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부근 계남산을 운동 삼아 자주 오르곤 한다. 어느 겨울 아침, 하얀 눈이 내릴 때 산에 올라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면서 쓴 시다.
대로에는 벤츠 자동차가 흰 눈을 머리에 인 채 엉금엉금 출근길을 가고 있는데 나지막한 단층집에서는 모락모락 아침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과객으로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살다가 가야겠다고 푸근한 마음을 다잡았다.(*)
<김철교 시인 약력>
2002년 <시문학>추천완료. 시집;“무제 2018”외 10권.산문집;“영국문학의 오솔길”외 10권. 배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