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위에 쨍쨍했던 햇볕은
복사 되지 않는다
시간의 페이지를 열면 그림자를 끌고
갓길로 빠져 나가는 활자들 속에
오늘이 마지막인 듯
반납되지 않는 저녁이 있다
폐기된 기억이 일제히 더 강해지고
밑줄 친 바닥은 새로운 계정들이
서로 옮겨 다니는 불합리적 관계,
여러 겹의 표정들의 묶음
역할이 다 끝나기도 전에
쉽게 와 닿지 않는 삶의 공식들이
뒷골목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의 귓속에서 독백이 자라나고
처방전은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의 두 귀를 자꾸 후벼댔다
쓴맛의 대한 사용 설명서는
누구의 의중인가!
날개 꺾인 찌르레기의 울음소리
가득히 유물처럼 쌓이는데,
포승줄에 묶인 건기의 시간은
형체도 없이
하루의 관용이 술잔에 고여 있다
[시작노트]
도시의 불빛은 화려하다. 그 속에서 실타래처럼 뒤엉킨 사람들의
고뇌의 흔적은 자신의 발자취마저 또 다른 타인의 벽이 되어
현실은 더 이상 관용이란 없다.
후미진 뒷골목엔 삶의 몸부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인간의 본능은 휴식을 갈망한다.
짓눌려 버린 어깨는 안식과 욕망의 경계에서 기댈 곳을 찾아 해매지만,
그것은 바람의 이동설처럼 안착할 수 없는 독백이다.
서민들의 상징이 된 곳은 애잔함이 베어 알전등에 매달려 있다.
고단한 눈물은 그 어떤 진한 액체보다 강인하고 끈적끈적한 다층적 삶의 비상이다.
[김선영 시인 약력]
전북 김제 출생 순수문학 등단. 시집 『달팽이 일기』『어디쯤 가고 있을까』『시들 시들한 詩』
국영문시집 『향낭 속에 간직했던 시어가 꽃이 되다』 「봄날은 간다(공저)」 외 다수
제27회 영랑문학상 본상 수상, 제28회 순수문학상 본상 수상, 제22회 황진이문학상 본상 수상, Poetry Korea 2021 국제화에 앞서가는 시인 상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동국문학인회 회원, 순수문학인회협회 부회장, 기독교문인협회 회원, 한국시낭송총연합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