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사물들의 말 -시인 하순명
  • 포켓프레스
  • 등록 2022-08-30 10:29:13

기사수정

마음이 헛헛한 날엔 한강 둔치를 걷는다

 

강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곁에서 물결치는 갈댓잎도 강을 헤엄치는 

등이 푸른 물고기도 말을 걸어온다.

키 작은 나뭇가지에서 앵두꽃과 자잘한 풀꽃들이 

조용하게 말을 걸어온다.

강 건너 밀집한 옥수동 아파트도 말을 걸어오고

강둑에서 도란거리는 젊은이들의 풍경도 

눈짓을 보내온다

 

내 말은 바람에 실려 하늘로 날아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나는 또 다른 누구에겐가 말을 건다.

수면위에 반짝이는 햇빛 그 빛남에게

물결치는 잔디에게

강바람을 질주하는 자전거 바퀴에게

내 옷깃을 스쳐가는 그 바람에게

 

홀로 앉아있는 통나무 의자에게도

저 하늘의 잿빛 구름에게도 

아픔은 위안에게 

내 몸에 고인 내 슬픔에게.

 

 

[시작노트]

 틈틈이 지척에 있는 한강 둔치를 걷는다. 여름감기로 몸을 앓을 때도 그곳에 가면 통증이 가라앉는 것 같다. 더구나 가슴에 통증이 자랄 때 강물을 곁에 두고 들꽃이 되어 나무가 되어 물의 입으로 말하고 바람의 입으로 중얼거린다. 주변의 사물과 기억에 귀 귀울이는 서정, 또 지극히 얕지만 불교적 사유와 깨달음을 간구한다. 

 그럴 때면 어쩌다 내 사막의 영토에 눈썹 만큼한 현기증, 시의 영혼이 감탄사 한 글자 흘리고 가서 딱 한 번 숨 쉬는 법 배운다. 다행이다. 다시 천천히 강변을 걷는다. 침묵의 나직한 육성으로 나의 시가 살아있기를 ...

 

하순명 시인 약력

1998년 「文藝思潮」 등단

시집「밤새도록 아침이 와도」「나무가 되다」「산도産道」「그늘에도 냄새가 있다」「물의 입, 바람의 입」, 교단에세이「연둣빛 소묘」, 논문「辛夕汀詩硏究」 

한국시문학상, 한국문협서울시문학상, 공무원문학상, 세계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서초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이사, 국제펜한국본부이사, 한국공무원문인협회 회장역임,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