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아래 심어둔 모과나무
미처 여미지 못한 옷깃 잔가지에 걸리어
갓 피어난 꽃잎들
삽시간에 허공으로 흩뿌리고 말았다
가만 펴 있는 너들 어쩌자고 흔들어
바람도 아니면서 서둘러지게 했으니
고개 숙여 아무리 미안하다 사죄한들
다시 쓸어 제자리로 돌릴 순 없었다
이런 부주의함으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순간을
곁가지에 걸리어 망가뜨리고 만 것일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놓쳐버린 저
꽃들의 시간 앞에 할 말이 없다
다급히 손바닥으로 받아낸
가녀린 꽃잎 몇은
유리잔에 물 담아 띄웠다
하루는 더 두고 볼 수 있을까 하고
그렇게라도 보내면 덜 미안할까 하고
뒤통수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 날
담장 아래 연분홍 잠시 번졌던 사연은
흔들리며 그렇게 다 지고 말았으니,
하지만 이 봄이 아주 이별은 아니라고
다음 약속 따윈 굳이 하지 말자며
애써 매정한 척 등을 돌렸다
[안서경 시인 약력]
1986년 월간<시문학> 등단. 시집 <그리운 저녁> (1994)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경기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