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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이유 -시인 안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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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2-04-05 1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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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아래 심어둔 모과나무 

미처 여미지 못한 옷깃 잔가지에 걸리어

갓 피어난 꽃잎들 

삽시간에 허공으로 흩뿌리고 말았다

 

가만 펴 있는 너들 어쩌자고 흔들어 

바람도 아니면서 서둘러지게 했으니

고개 숙여 아무리 미안하다 사죄한들 

다시 쓸어 제자리로 돌릴 순 없었다

 

이런 부주의함으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순간을 

곁가지에 걸리어 망가뜨리고 만 것일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놓쳐버린 저 

꽃들의 시간 앞에 할 말이 없다

 

다급히 손바닥으로 받아낸 

가녀린 꽃잎 몇은

유리잔에 물 담아 띄웠다

하루는 더 두고 볼 수 있을까 하고

그렇게라도 보내면 덜 미안할까 하고

뒤통수를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 날

 

담장 아래 연분홍 잠시 번졌던 사연은 

흔들리며 그렇게 다 지고 말았으니,

하지만 이 봄이 아주 이별은 아니라고

다음 약속 따윈 굳이 하지 말자며

애써 매정한 척 등을 돌렸다

 

 

 

[안서경 시인 약력]

1986년 월간<시문학> 등단. 시집 <그리운 저녁> (1994)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경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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