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바람이 수학책을 넘기고 있다
어린 소나무는 숫자 1부터 10
참나무는 11에서 100 사이 경우의 수
개웇나무와 늙은 굴참나무
나무들의 숫자가 산 아래부터 중턱까지 펼쳐져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를 더하고 빽 때만 해도 숨이 차지 않았다
산길 좁은 모퉁이에 가파른 바위 그래프
탄젠트, 리미트의 복잡한 수식이 나타나 풀어보라고
산바람이 막고 서있다
함께 간 K는 나뭇가지를 꺾어 척척 풀더니
혼자 산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이제 나 혼자 벌벌 떨며 문제를 풀어보는데
바람이 슬쩍 공식을 던져줘도 모르겠다
애당초 북한산을 넘보지 말았어야 했다
구름이 점점점 불어나 무한대 구름띠로 하늘을 꽉 채우자
그때서야 바람이 척 알아듣고
술술술 풀어, 내 이름 대신 제출한다.
[이정현 시인 약력]
2016년 계간문예 등단
시집: 『살아가는 즐거움』 『춤명상』 『풀다』 시선집: 『라캉의 여자』
산문집: 『내 안의 숨겨진 나』
수상: 문협서울시문학상 외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문학과 창작』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