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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시인 임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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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10-24 14: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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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수도원처럼 하느님 모시는 집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길을 열어 주어

주민 센터에, 혈압약 지으러 지름길로 간다

검붉은 벽돌과 색 바랜 스테인드글라스, 양철지붕과 종탑 보루

천사들이 지키고 있는 본당은 지은 지 하마 60년

번성한 은행나무, 느티나무가 성전 파수꾼이다

성당은 피난민들의 거처를 굽어보는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방 고층 아파트 숲 옴팍한 저지대로 남아 있다 

가끔 이 길을 지나며 안쪽을 힐끔거리나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화단 가에 박혀 있는 다듬지 않은 돌들까지

차분한 본당의 분위기에 경배하듯 유순하다

홍해 길을 열어주신 신부님께선 아셨을까

주민들 이 길을 지나며

삶에 이어 죽음은 오리니

나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관리하는 사람 없어도

홍해를 건너 주민 센터에, 학교에, 시장에 간다

잠시 부산스런 마음 부려 놓으니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 모두 제자리에 있다


 

 

[임채우(林采宇) 시인 약력] 

2011년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로 등단.

시집 『오이도』 『토끼의 뽀얀 연분홍 발뒤꿈치』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 『설문』이 있으며, 산문집 『시가 말을 걸었다』와 비평집 『촉도난』 등이 있음.

現 (사)우리詩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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