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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깎으며 -시인 홍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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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10-05 1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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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나무로 만든 연필을 깎는다

모래막이 숲에서 나무 한 그루 처형한다

모래바람이 백양나무 잎을 때리는

비명의 중심을 파내려간다

 

혼돈의 결정체가

천 도 이상의 높은 열에 단련을 받고

불순한 생각이 형체 없이 녹아내린

캄캄한 막장에 닿는다

 

비밀의 통로를 채운 숲은 숯처럼 부서진다

울컥 바람소리를 토하는 모가지를

서늘한 칼날이 지나간다

비스듬히 칼등을 미는 손가락 끝에

나무의 저항이 팽팽하다

 

생은 쓸수록 닳아서

마침내, 몽당연필처럼 버려진다

온 몸으로 쓴

지울 수 없는 문장이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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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숙 시인 약력]

문예지 『竹筍』 등단(1984년).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석사). 시집 『허공에 발 벗고 사는 새처럼』 『연잎 찻잔』 외 다수. 전국성호문학상 대상 수상(2017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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