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둑길을 걷는다
이제 그만 푸르러야겠다고
갈대들 허연 머리를 나부대며 말한다
유리컵처럼 투명한 하늘로 빨려들었는지
동천지킴이 왜가리도
소실점 되 사라지고
마른 향기를 흔들어 쏟아내던 구절초도 고개 꺾어
목탄화 그림의 배경이 되고
꽃들이 키를 재며 향기를 쏟아내던
흔적을 지울 양 들녘으로
늦가을비 흐렁흐렁 울며 내리고
나도 부질없이 쥐고있던 가을을 놓아주어야겠다
떠날 것은 다 떠나라
여름 밀어내고 가을 들고
가을 뒤안으로 겨울 오고
겨울 끝자락을 붙잡고
봄은 오겠지
언제 한 계절이라도 비워둔 적 있던가
[조남훈 시인 약력]
충북 음성 출생. 62년 충청일보 시 발표 등단. 64년 <잉여촌> 창간 동인.
시집; “지적도에도 없는 섬 하나”“숲에는 문이 없다”외 다수.
창릉문학상, 남도문학상 수상.